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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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역사

"학문을 숭상하고 예절의 지키며, 백성은 농사에 힘 쓰고 여자는 누에를 친다"
士尙禮節 民務農業 女事蠶桑

"절약하고 검소함을 숭상하고 점업에 힘쓴다."
尙節儉 務蠶業

봉화군은 과거로부터 학문을 숭상하고 예절을 지키며 본업에 힘쓰는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수려한 풍광속에 선비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예절의 고장이다. 인구 3만여명에 1읍 9개면이며, 전체면적의 83%가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특산물이 많은 곳이다. 특히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청량산을 위시한 명산과 국보 및 보물들이 산재해 있고, 산림이 많은 곳에 어울리게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봉화는 삼한시대의 기저국(己柢國)로부터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서깊은 고장으로, 과거 고사마(古斯馬), 봉성(鳳城), 옥마(玉馬) 등으로 불리우다가 고려시대로부터 봉화(奉化)라고 불리게 되었다.

봉화의 간략한 역사
삼한시대
진한의 기저국에 속하였음
삼국시대
현재의 봉성면 일대가 고구려의 내기군 고사마현에 속하였음.
신라5대 파사왕(80~112)
신라 영토에 속하였음
신라 35대 경덕왕(742~765)
내령군 옥마현으로 개칭
고려 8대 현종(1010~1031)
고려 8대 현종(1010~1031)때 봉성현으로 개칭
조선26대 고종 32년(1895)
조선26대 고종 32년(1895)에 봉화현을 봉화군으로 개칭
조선순종1년(1907)
조선순종1년(1907)에 군청사를 봉성에서 춘양으로 옮겼음
1914년
군청을 춘양에서 내성리 285번지로 옮기고 15개면을 9개면으로 개칭.
1962년
11월 춘양면 덕구리와 천평리를 강원도 영월군에 편입
1963년
3월 석포출장소를 설치하여 소천면 석포리, 대현리, 승부리를 관할토록 함.
1973년
7월 법전면 소로리가 춘양면에 편입되고, 상운면 두월리와 내림리를 영주군 이산면으로 편입
1979년
7월 봉화면을 봉화읍으로 승격
1983년
2월 명호면 신라리를 상운면으로 편입하고, 소천면 석포출장소를 석포면으로 승격하고, 10월에 봉화읍 포저2리를 포저2·4리로 분동함.
1991년
1월 봉성면 원둔리를 봉양리로 명칭을 변경함.
1994년
7월 춘양면 우구치1·2리를 우구치리로, 소천면 고선1·2리를 고선2리로, 고선3리를 고선1리로, 명호면 북곡1·2리를 북곡리로 통합.
2000년
1월 석포면 대현1·2리를 대현1리로, 대현3리를 대현2리로, 재산면 현동2·4리를 현동2리로,남면 1·2리를 남면리로, 갈산1·2리를 갈산1리로, 갈산3·4리를 갈산2리로, 상리1·2리를상리리로, 상운면 문촌1·2리를 문촌리로 신라1·2리를 신라리로 통합.
2002년
11월 봉화읍 포저리를 내성리로 명칭을 변경함.
2004년
3월 군청사를 봉화읍 내성리 285번지에서 537번지로 옮김.
2015년
6월 봉화읍 내성3리 구역 중 일부를 내성5리로 분동함. 소천면 분천리 '도호'지역을 현동3리로 편입함.